라이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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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이카는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시켜 지구 궤도에 진입시킨 개로, 최초로 궤도 비행을 한 생명체이다. 본래 이름은 쿠드럅카이며, 모스크바의 떠돌이 개 중에서 선발되어 훈련을 받았다. 스푸트니크 2호 발사 후 과열과 스트레스로 인해 몇 시간 만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사건은 동물 실험 윤리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라이카는 이후 기념물, 우표 등으로 기념되었으며, 문화적으로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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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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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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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쿠드랴프카 (, "곱슬머리") |
종 | 개 Canis familiaris |
품종 | 잡종견, 일부 허스키 (또는 일부 사모예드) 및 일부 테리어일 가능성 |
성별 | 암컷 |
출생지 | 모스크바, 러시아 SFSR, 소비에트 연방 |
사망일 | 1957년 11월 3일 (향년 세) |
사망 장소 | 스푸트니크 2호, 저궤도 |
사망 원인 | 고열증 |
알려진 것 | 지구 궤도를 돈 최초의 동물 |
소유자 | 소비에트 우주 프로그램 |
몸무게 | 5 kg () |
이름 | |
로마자 표기 | Laika |
발음 | , |
기타 | |
기타 정보 | |
러시아어 위키낱말사전 | |
관련 기사 | 우주 최초 비행은 초파리 미주 중앙일보 |
2. 라이카의 선발과 훈련
라이카는 원래 '''쿠드럅카'''(Кудрявка|쿠드럅카ru)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모스크바의 길거리를 떠돌던 중 소련 과학자들에게 발탁되었다.[1] 당시 소련 과학자들은 유기견들이 이미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는 법을 터득했을 것이라 판단하여 우주 비행견 후보로 길거리의 개들을 선호했다. 쿠드럅카는 1954년경 태어나 가정에 입양되었으나 버려져 모스크바 거리를 떠돌다가 항공의학연구소 연구원에게 발견되어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항공의학연구소에서 쿠드럅카는 '알비나', '무슈카' 등 다른 개들과 함께 우주 비행을 위한 훈련을 받았다.[19][16][15] 훈련은 소련 우주 생명 과학자인 블라디미르 야즈도프스키와 올레그 가젠코가 담당했다.[1] 여러 후보견 중 쿠드럅카는 비교적 침착한 성격과 영리함을 보여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할 최종 비행견으로 선발되었다.[20] 알비나는 예비 비행견으로, 무슈카는 지상에서 장비 테스트를 위한 대조군으로 역할이 정해졌다.[1][1]
훈련 과정에는 개들을 스푸트니크 2호의 좁은 캡슐에 적응시키기 위해 점차 작은 우리에 가두는 과정, 로켓 발사 시의 가속도를 견디게 하기 위한 원심 분리기 훈련, 우주선 소음 적응 훈련 등이 포함되었다.[1] 또한 우주에서 섭취할 특수 고영양 젤 형태의 식사에 적응하는 훈련도 받았다.[1]
발사를 열흘 앞두고 블라디미르 야즈도프스키는 라이카를 최종 비행견으로 확정했다.[1] 야즈도프스키는 발사 전 라이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아이들과 함께 놀게 해주기도 했다. 그는 후에 "라이카는 조용하고 매력적이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고 회고하며 라이카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냈다.[1]
2. 1. 이름과 품종
라이카는 원래 특정 개 품종을 가리키는 러시아어 단어이다. 라이카는 허스키와 유사한 북방 사냥개 품종군을 총칭하는 말이며, 러시아어 동사 лаять|라야티ru(짖다)에서 유래하여 '짖는 개'라는 뜻을 가진다.[2] 일부 기록에 따르면, 기술자들이 쿠드럅카가 잘 짖었기 때문에 이름을 라이카로 바꾸었다고 한다.[2]라이카의 원래 이름은 '''쿠드럅카'''(Кудрявка|쿠드럅카ru)로, '작은 곱슬머리'라는 뜻이다. 그녀는 모스크바 거리를 배회하던 유기견이었으며[1], 당시 약 3살 정도의 암컷 잡종견이었다. 몸무게는 약 5kg에서 6kg 사이로 기록되어 있다. 소련 과학자들은 모스크바의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이미 단련되었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길거리 유기견들을 우주견 후보로 선발했다. 쿠드럅카 외에도 주치카('작은 벌레'), 리몬치크('작은 레몬') 등의 다른 이름으로도 불렸다.
스푸트니크 2호 발사 직후, 개의 이름에 대한 보도는 혼란스러웠다. 초기 일부 보도에서는 '쿠드리야프카'라는 이름의 스피츠라고 알려지기도 했다.[8] 미국 AP가 소련으로부터의 정보로 "개의 진짜 이름은 라이카이다"라고 보도하면서 '라이카'라는 이름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소련 내부를 포함하여 공식적으로 '라이카'라는 이름이 통용되었고, 현재 러시아의 관련 기념비에도 Лайка|라이카ru라고 새겨져 있다.
미국 언론에서는 라이카를 스푸트니크(Sputnik)와 '잡종견'(Mutt)을 합쳐 '''무트니크'''(Muttnik)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라이카의 정확한 개 품종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허스키나 다른 북방계 품종, 그리고 테리어의 피가 섞인 잡종견일 것으로 추정된다. NASA는 라이카를 "사모예드 테리어의 일부"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1958년 소련 문화성 자료에서도 "라이카의 혈통은 유감스럽게도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11] 한 러시아 잡지는 라이카가 다른 개들과 다투지 않는 차분한 성격이었다고 묘사했다.
2. 2. 훈련 과정
소련과 미국은 이전에 동물을 탄도 비행에만 보낸 적이 있었다.[1]스푸트니크 2호 비행을 위해 세 마리의 개, 알비나, 무슈카, 라이카가 훈련 대상으로 선정되었다.[16][15] 소련의 우주 생명 과학자인 블라디미르 야즈도프스키와 올레그 가젠코가 이 개들의 훈련을 담당했다.[1]
개들을 스푸트니크 2호의 비좁은 캡슐 공간에 적응시키기 위해, 최대 20일 동안 점차 더 작은 우리로 옮겨가며 생활하게 하는 훈련이 진행되었다.[1] 좁은 공간에 장기간 갇히는 것은 개들이 소변이나 배변 활동을 멈추게 하고 불안감을 느끼게 만들었으며,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악화시켰다. 완하제 투여는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못했고, 연구원들은 장기간의 적응 훈련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1]

또한 개들은 로켓 발사 시의 가속도를 체험하기 위해 원심 분리기 훈련을 받았고, 우주선의 소음을 모방한 기계 장치에도 노출되었다. 이러한 훈련 과정에서 개들의 맥박은 평소의 두 배로 빨라지고 혈압은 30~65 torr 만큼 상승하는 반응을 보였다.[1] 이와 함께 우주에서 섭취할 특수 고영양 젤 형태의 식사에 적응하는 훈련도 병행되었다.[1]
발사를 열흘 앞두고, 블라디미르 야즈도프스키는 라이카를 주요 비행견으로 최종 선택했다.[1] 라이카는 지구로 돌아올 수 없는 편도 임무에서 과학 발전을 위한 '비행견'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1] 이미 고고도 시험 로켓 비행 경험이 두 차례 있었던 알비나는 라이카의 예비 비행견으로 지정되었고, 세 번째 개인 무슈카는 지상에 남아 계측 장비와 생명 유지 장치를 시험하는 대조군 역할을 수행했다.[1][1]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로 출발하기 전, 야즈도프스키와 가젠코는 개들에게 수술을 집도하여 호흡, 맥박, 혈압 등을 측정하는 센서와 송신 장치를 케이블로 연결했다.[1]
3. 스푸트니크 2호 발사와 비행
1957년 10월 스푸트니크 1호의 성공 이후, 소련의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는 10월 혁명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57년 11월 7일에 새로운 우주선을 발사하기를 원했다. 흐루쇼프는 스푸트니크 1호의 성공을 이어받아 소련의 뛰어난 기술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우주쇼"를 기대했다.
당시 개발 중이던 스푸트니크 3호는 더 정교했지만 11월까지 준비될 수 없었기 때문에,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 새로운 위성을 급하게 제작해야 했다. 수석 설계자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위성에 개를 태울 것을 제안했고, 이는 빠르게 받아들여졌다. 소련의 로켓 기술자들은 유인 우주 비행에 앞서 개를 이용한 궤도 비행 실험을 계획하고 있었으며, 1951년부터 탄도 비행으로 개들을 준궤도까지 보내는 실험을 해왔다. 흐루쇼프의 요구에 따라 이 궤도 비행 계획이 앞당겨진 것이다.
러시아 자료에 따르면, 스푸트니크 2호 발사에 대한 공식 결정은 10월 10일 또는 12일에 내려졌고, 설계와 제작에 주어진 시간은 4주가 채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스푸트니크 2호는 다소 급하게 만들어졌으며, 많은 부분이 대략적인 스케치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우주로 보내는 주 임무 외에도, 태양 복사와 우주선을 측정하는 장비도 탑재되었다.
우주선에는 산소 발생기, 산소 중독 방지 및 이산화탄소 흡수 장치로 구성된 생명 유지 시스템이 장착되었다. 객실 온도가 15°C를 넘으면 작동하는 냉각 팬도 설치되었다. 7일 분량의 젤리 형태 음식이 제공되었고, 배설물 수집 장치와 움직임을 제한하는 안전띠 및 사슬이 있었다. 객실은 라이카가 방향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심전도 센서로 심박수를 측정하고, 다른 장비로 호흡수, 최대 동맥압, 움직임을 추적했다.
1957년 11월 3일, 라이카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는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지구 궤도에 도달했다. 이는 지구 궤도에 진입한 최초의 생명체 비행이었다. 이전에도 소련과 미국은 동물을 로켓에 실어 우주로 보낸 적이 있지만, 지구 궤도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우주에 간 동물 참조). 스푸트니크 2호는 대기권 재돌입 기능 없이 설계되었기 때문에 라이카는 처음부터 지구로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이었다.
3. 1. 기술적 문제와 라이카의 죽음
1957년 11월 3일, 라이카를 실은 스푸트니크 2호는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발사되어 위성 궤도에 도달했다. 스푸트니크 2호는 애초에 대기권 재돌입 및 회수가 불가능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라이카의 생환은 고려되지 않았다.발사 시 최대 가속 단계에서 라이카의 호흡 수는 발사 전보다 3~4배 증가했다. 센서 기록에 따르면, 발사 전 분당 103회였던 심박수는 초기 가속 시 분당 240회까지 치솟았다. 궤도 진입 후, 스푸트니크 2호의 노즈 콘은 성공적으로 분리되었으나, 로켓의 "블록 A" 코어가 계획대로 분리되지 않아 열 제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일부 단열재가 손상되어 기내 온도가 40°C까지 상승했다.
무중력 상태에 돌입한 지 3시간이 지나서야 라이카의 맥박수는 분당 102회로 안정되었는데, 이는 지상 실험 때보다 3배나 더 오래 걸린 시간으로 라이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음을 보여준다. 초기 원격 측정 데이터는 라이카가 불안해하면서도 먹이를 먹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비행 시작 약 5~7시간 후, 우주선에서 더 이상 라이카의 생명 신호가 감지되지 않았다.
라이카의 정확한 사망 원인과 시점에 대해 소련 당국의 발표는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었다. 초기에는 발사 후 10일째에 미리 준비된 독극물이 든 먹이를 먹여 안락사시켰다고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1999년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은 기밀 해제된 자료를 통해 "라이카가 발사 4일째 되던 날, 기내 결함으로 인한 과열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후 2002년 10월, 스푸트니크 2호 계획에 참여했던 과학자 드미트리 말라셴코프(Дмитрий Малашенков|드미트리 말라셴코프ru)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세계 우주 회의에서 라이카가 발사 후 네 번째 궤도를 돌던 중(약 5~7시간 후) 과열과 스트레스로 사망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말라셴코프는 논문에서 "그렇게 제한된 시간 안에 신뢰할 수 있는 온도 제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밝히며 당시 기술적 한계를 인정했다.
라이카의 사체를 실은 스푸트니크 2호는 지구 궤도를 2,570회 선회한 뒤, 발사 5개월여 만인 1958년 4월 14일 대기권 재돌입 과정에서 완전히 불타 없어졌다.
4. 동물 실험 윤리 논쟁
소련은 우주 공간에서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의 일환으로, 1957년 11월 3일 실험견 라이카를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 우주로 보냈다. 그러나 발사 후 약 7시간 만에 우주선 내부의 온도 조절 시스템이 고장 나면서 과열이 발생했고, 라이카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열로 인해 사망했다. 스푸트니크 2호는 1958년 4월 14일 지구 대기권에 재진입하며 소멸했다.
당시 미국과의 냉전 및 우주 경쟁이 한창이었던 상황에서, 과학계와 언론은 라이카 실험의 윤리적 문제보다는 정치적, 과학적 측면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초기에는 라이카의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스푸트니크 2호는 애초에 지구로 귀환할 기능이 없었으며, 라이카는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임무에 투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과학 발전을 위한 동물 실험과 동물 학대의 정당성에 대한 심각한 윤리적 질문을 던졌고, 격렬한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생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동물을 우주로 보낸 결정은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4. 1. 국제적 반응
소련과 미국 간의 우주 경쟁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라이카의 임무가 지닌 윤리적 문제는 초기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당시 언론은 정치적 관점에 집중했으며, 스푸트니크 2호가 회수 불가능하게 설계되어 라이카의 희생이 예정되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동물 실험과 동물 학대에 대한 전 세계적인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영국에서는 특히 반발이 거셌다. 동물 보호 단체인 도그스 트러스트(Dogs Trust)는 모든 개 소유주에게 라이카를 추모하며 매일 1분간 묵념할 것을 촉구했다. RSPCA는 모스크바 방송의 공식 발표 이전부터 항의를 받기 시작했으며, 여러 동물 권리 단체는 소련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도록 대중에게 촉구했다.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한편, 미국의 일부 연구자들은 초기에 소련의 실험을 지지하는 듯했으나, 라이카의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소식이 전해지자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소련 내부에서는 이러한 논란이 거의 없었다. 언론이나 서적 등에서 라이카의 희생에 대한 문제 제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1998년, 소련 붕괴 후 이 실험에 참여했던 과학자 중 한 명인 올레그 가젠코(Oleg Gazenko)는 뒤늦게나마 후회의 뜻을 밝혔다.
동물과 함께 일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고통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말할 수 없는 아기처럼 다룹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후회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 임무에서 개의 죽음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한 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소련의 영향권 아래 있던 바르샤바 조약 기구 국가들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폴란드의 과학 저널 ''Kto, Kiedy, Dlaczego''("누가, 언제, 왜")는 1958년판에서 스푸트니크 2호 임무를 다루며, 과학자 크시슈토프 보룬(Krzysztof Boruń)의 기고를 통해 라이카를 생환시키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다"고 표현하고 "과학에 큰 손실"이라고 비판했다.
라이카의 이야기는 이후에도 전 세계적으로 기억되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추모가 이루어졌다. 일본의 리듬 게임 팝픈 뮤직에는 라이카를 추모하는 곡인 "스페이스 도그(sana - space dog)"가 수록되기도 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화성 탐사 로버 임무 수행 중 화성의 특정 토양 지점에 '라이카'라는 이름을 붙여 그녀를 기렸다.

4. 2. 소련의 입장과 반성
당시 소련의 과학자들은 라이카 실험의 윤리적 문제보다는 과학적 성과 달성에 더 주목했다. 미국과의 치열한 냉전 및 우주 경쟁 분위기 속에서 라이카의 죽음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스푸트니크 2호는 애초에 지구로 귀환하도록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라이카는 발사 시점부터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학 발전을 명목으로 한 동물 학대와 동물 실험의 정당성에 대한 국제적인 논쟁이 촉발되었다.영국에서는 도그스 트러스트(Dogs Trust)가 라이카를 추모하며 개 주인들에게 매일 1분간 묵념할 것을 촉구했고,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RSPCA)는 모스크바 방송이 발사 성공을 발표하기도 전에 이미 항의를 받았다. 여러 동물 권리 단체들은 소련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실험을 주도한 소련 내부에서는 이러한 논란이 거의 없었다. 당시 언론은 라이카의 희생이나 실험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았으며, 이후 출판된 관련 서적이나 논문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간이 흘러 1998년, 소련 체제가 붕괴된 후 당시 실험에 참여했던 핵심 과학자 중 한 명인 올레그 가젠코(Oleg Gazenko)는 라이카를 죽음으로 내몬 것에 대해 깊은 후회를 표명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동물과 함께 일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고통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말할 수 없는 아기처럼 다룹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후회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 임무에서 개의 죽음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한 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한편, 다른 바르샤바 조약 기구 국가에서는 정치적 검열 때문에 소련 우주 프로그램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어려웠다. 그러나 폴란드에서는 1958년에 발행된 과학 간행물 ''Kto, Kiedy, Dlaczego''("누가, 언제, 왜")를 통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해당 간행물의 우주 항법 섹션에서 크시슈토프 보룬(Krzysztof Boruń)은 라이카를 살아서 지구로 귀환시키지 않은 것을 "유감스럽다"고 표현하며 "의심할 여지 없이 과학에 큰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5. 라이카의 유산
1957년 11월 3일, 라이카를 태운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가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발사되어 지구 궤도에 진입했다. 이는 동물이 지구 궤도를 선회한 최초의 사례였다. 이전에도 미국과 소련이 동물을 우주로 보낸 적이 있었지만, 궤도 비행에는 이르지 못했다(우주에 간 동물 참조). 실험 대상으로 암컷 개가 선택된 이유는 수컷과 달리 배설 시 다리를 들지 않아 좁은 공간에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스푸트니크 2호는 지구로 귀환하는 기능 없이 설계되었으며, 라이카는 애초에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임무에 투입되었다. 당시 소련 당국은 라이카가 발사 후 며칠간 생존하다가 계획대로 약물이 든 먹이를 먹고 안락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999년과 2002년에 공개된 러시아 측 정보에 따르면, 라이카는 발사 후 몇 시간 만에 스트레스와 우주선 내부의 과열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발사 당시 라이카의 심박수는 분당 103회에서 240회까지 치솟았고, 무중력 상태에 도달한 후에도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지상 실험보다 3배나 긴 시간이 걸렸다. 또한 단열재 일부가 손상되어 선내 온도는 15°C에서 41°C로 급격히 상승했으며, 비행 시작 약 5~7시간 후부터는 라이카의 생체 신호가 수신되지 않았다. 스푸트니크 2호는 1958년 4월 14일 대기권에 재돌입하며 불타 없어졌다.
라이카의 희생 이후, 소련은 동물을 안전하게 회수하는 것을 목표로 후속 우주 임무를 진행했다. 1960년 코라블-스푸트니크 2호(Korabl-Sputnik 2)에 탑승했던 벨카와 스트렐카는 다른 여러 생물과 함께 성공적으로 지구로 귀환한 첫 사례가 되었다.[5] 하지만 모든 임무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1960년 7월 28일에는 바르스와 리시치카가 발사 직후 R-7 로켓 폭발로 사망했고, 코라블-스푸트니크 3호(Korabl-Sputnik 3)에 탔던 프치올카와 무슈카는 비상 상황으로 인해 우주선이 폭파되면서 희생되었다.
라이카는 우주 개발 초기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으며, 그의 이야기는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되고 기억되고 있다.
5. 1. 기념과 추모

라이카는 러시아 우주비행사 훈련 시설인 별 도시에 동상과 명판 형태로 기념되고 있다. 1997년에 제작된 라이카 동상은 우주비행사들 뒤편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1964년 건설된 모스크바의 우주 정복자 기념비에도 라이카의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
2008년 4월 11일에는 라이카의 우주 비행 준비를 담당했던 군사 연구 시설 부지에 라이카가 우주 로켓 위에 서 있는 모습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또한, 발사 40년 후에는 우주견들이 훈련받았던 모스크바 페트로프스키 공원 인근 항공우주의학연구소에 라이카 기념비가 건립되었다.[7] 크레타섬의 호모 사피엔스 박물관에도 라이카 기념비가 있다.
라이카를 기리기 위해 그의 모습이 담긴 우표와 봉투가 발행되었으며, 라이카의 이름이 붙은 담배와 성냥갑이 생산되기도 했다.[4]
5. 2. 문화적 영향
라이카를 기리기 위한 여러 기념물이 세워졌다. 러시아 우주비행사 훈련 시설인 별 도시에는 1997년 제작된 동상과 명판이 있으며, 이 동상은 우주비행사들 뒤에 귀를 쫑긋 세운 라이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우주 정복자 기념비(1964년 건설)에도 라이카가 포함되어 있다. 2008년에는 라이카의 훈련을 담당했던 군사 연구 시설 앞에 우주 로켓 위의 라이카를 형상화한 기념비가 세워졌고, 발사 40년 후에는 모스크바 페트로프스키 공원 인근 항공우주의학연구소에도 기념비가 건립되었다.[7] 또한 크레타섬의 호모 사피엔스 박물관에도 라이카 기념비가 있다.[7]라이카의 모습은 우표와 봉투뿐만 아니라 담배, 성냥 등의 상품에도 사용되었다.[4]
라이카의 이야기는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케이드 게임 <팝픈 뮤직>의 수록곡 "스페이스 도그(sana - space dog)"는 라이카를 추모하며 동물의 희생을 기억하게 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칼 슈뢰더(Karl Schroeder)의 공상과학 소설 단편 ''라이카의 유령(Laika's Ghost)'' 역시 라이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6]
참조
[1]
뉴스
Recalling top dog Laika, 65 years after pathbreaking space flight
http://www.svengrahn[...]
Indian Express
2022-11-03
[2]
웹사이트
"Epoch of the Dog: Names and Stories of the Soviet Space Exploration" (in Russian)
https://habr.com/ru/[...]
2018-01-27
[3]
웹사이트
Laika Monument
https://www.atlasobs[...]
2022-11-03
[4]
웹사이트
The dog that orbited the Earth
https://www.bbc.co.u[...]
BBC News Magazine
2017-11-08
[5]
웹사이트
Laika the dog: These are all the animals that have been into space
https://www.newsweek[...]
2019-11-03
[6]
웹사이트
The Widening Gyre: 2012 Best of the Year Anthologies
https://lareviewofbo[...]
Los Angeles Review of Books
2012-09-03
[7]
뉴스
「ライカ犬」搭乗の人工衛星「スプートニク2号」打ち上げから50年
https://www.afpbb.co[...]
AFP
2007-10-31
[8]
서적
宇宙開発の50年
朝日新聞社
2007
[9]
Youtube
Russian Sputnik 2 film
http://www.youtube.c[...]
[10]
서적
スプートニク ソ連の人工衛星のすべて
朝日新聞社
1958
[11]
서적
スプートニク ソ連の人工衛星のすべて
朝日新聞社
1958
[12]
서적
レッドムーン・ショック
日本放送出版協会
2009
[13]
서적
スプートニク
筑摩書房
1999
[14]
서적
スプートニク
筑摩書房
1999
[15]
웹사이트
Научное обоснование возможности космических полетов человека и их медико-биологическая подготовка
http://www.astronaut[...]
[16]
서적
スプートニク ソ連の人工衛星のすべて
朝日新聞社
1958
[17]
웹인용
우주 최초 비행은 초파리
https://web.archive.[...]
미주 중앙일보
2017-10-28
[18]
일반
[19]
일반
[20]
서적
안녕, 라이카
마루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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